[간증 ]병영에서 만난 파란색 국제기드온 성경!(군인용 성경) >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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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1-28 13:43 조회1,6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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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에서 만난 파란색 국제기드온 성경!

곽재욱 목사

 

나는 19792월 육군에 입대하여 경북 대구에 있는 제 50사단에서 신병훈련을 받았다. 고향인 대구를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본적지로 차출되어 생면부지의 다른 신병훈련소 동기들 사이에 끼여 생소한 분위기에서 훈련을 받았다. 훈련소에 입소하면서 가지고온 모든 사물을 빠짐없이 집으로 붙이라는 으름장에 겁을 집어먹고 입고 왔던 옷가지와 함께 성경책도 냉큼 같이 싸서 돌려보냈다. 그것은 일면 당시 나의 신앙적 자세가 포함된 상징적 행동이었다. 신앙도 포기해야 하나?.... 당시 신병훈련소의 힘들고 엄한 분위기로는 주일날 예배 집합에 나서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예배집합에 두어 번 가고는 다시는 대열에 서지 않았다. 예배를 집합한다는 용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2학년을 3년에 걸려서 마치고 입대영장을 받았다. 대학진학을 결정할 때 나는 미술공부를 하기를 원했으나 아버지는 결사적으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나를 신학교에 몰아넣었다. 그런 부모님의 조처에 대해 나는 신학교 다니는 내내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했고 그런 나를 부모님은 으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다. 나는 호시탐탐 신학교를 빠져나갈 구실을 찾기 위해 정말 필사적이었다. 그런 내게 입대영장은 너무나 분명한 대의명분을 제공해주었다. 우선 부모의 시야를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정신적, 물리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충분한 시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었다.

훈련소 훈련을 받은 후 내가 배치된 곳은 보병 15사단 강원도 화천, 철원 지역의 철책을 사수하는 전방사단이었다. 39연대 3대대에 소속되었는데 어찌하다 우여곡절 끝에 인사과의 서무로 보직이 결정되었다. 그곳 인사과 사무실에는 장병들에게 제공되는 파란색 커버의 기드온 성경책이 있었다. 버리고 온 성경책과 다시 만난 성경책....온통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나, 목사의 아들로 자라고 신학교를 다니다 온 나에게 그것은 미묘한 복합적 정서가 포함된 물건이었으나 짐짓 모른 체 했다. 들어오고 나가며 멀찍이 그 성경책만 수없이 바라보았다. 참 착잡하다는 말이 그런 때에 사용하는 말인가 보다. 착잡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나님께서 내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내가 인사과 서무 조수에서 사수가 된 때와 새로 인사과장으로 송정규 소령이 부임한 시기는 일치했다. 나는 그때부터는 사수로서 홀로 복잡한 인사 업무의 책임을 져야 되는 상황이었고, 송 소령은 송 소령대로 새로 부임한 부서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 싶어 했으므로 일은 빡세고 긴장의 수위는 높아만 갔다. 그 긴장의 도가니에 한 줄기 바람은 바로 그 송 소령을 통해서 예.... ... 듣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도 모.. ........당시 그는 예수 믿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초신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새로 받아들인 신앙의 세계에 놀라워하고 그 내용에 심취했다. 그는 날마다 성경과 신앙서적들을 탐독했고 상고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심취한 책이 바로 <휴거>였다. 나는 4대째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일찍이 휴거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것이 영어단어인줄 알았다. (스펠이 어떻게 되지?....) 어쨌든 그가 열정적으로 말하면 나는 가만히 들으면서 추임새를 넣었다. 그 가운데는 휴거같이 들어본 적이 없는 말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은 신앙에 대해 그리 깊지 않은 내가 듣기에도 부정확하고 다소 문제가 있는 내용도 더러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 관해 논쟁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냥. 침묵했다. 추임새나 넣으면서...최소한 교회예배는 다녔다. 우리 부대에는 예배당이 없었다. 그래서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선 상급부대로 진중버스를 타고 30분을 나가야 했다. 가끔씩 부대를 나가 초소 검문을 거치는 절차가 귀찮아서 예배를 드리지 않은 때도 많았다. 그런 때에는 사무실과 내무반의 내 관물대 앞에 놓인 파란색 표지의 책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그 파란색 비닐 표지를 열어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송 소령이 부대 내에 교회를 세우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그는 부대장 다음으로는 권능이 있는 사람이어서 아마도 부대 내에서는 그만이 그런 일을 결심할 수도 있었고 결심한 일을 수행할 능력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1종 창고(쌀 창고를 군대에서는 그렇게 부른다)를 털어서 하늘색 페인트칠을 한 후, 창문에 커튼도 치고 교탁과 의자를 들여놓아 제법 예배당의 모습을 다 갖추었다. ! 그러나 그것이 완성은 아니었다. 풍금까지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정작 중요한 설교자가 있어야 예배를 드릴 수 있지 않은가? 처음 그 교회당을 지을 때의 약속은 상급부대 군종 목사님들이 주일예배를 드린 후에 오후에 우리 부대로 와서 예배를 인도하기로 했으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두 번 정도 오셨던 것 같다. 그리고는 그 후부터 참모회의, 서울출장 등 사정을 대면서 몇 달을 비게 되자 송 소령은 다급했다. 그는 그 상황을 예배를 정상적으로 드릴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예배당은 지어놓고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그 상황에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기왕 개척교회를 시작한 것, 부대 내에서 예배를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인사과에 비치되어 있는 서류철 중에는 전 사병들의 인사기록부 철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뒤적거리기며 첫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의 눈은 자신의 계원인 나의 인사기록부에 박혔다. “이봐, 곽 상병, 자네 신학교 나왔네?... 자네 목사님이야? 목사님이면 설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이고, 과장님 신학교 나온 게 아니고 겨우 이년 다니고 왔고요, 목사님이라뇨, 저 학교 제대로 다니지도 않았고 이제 전역하면 다시 돌아갈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 제가 설교라뇨? 당치 않습니다” “잔 말말아, 신학교 다녔으면 목사님이지, 자네 이번 주일부터 예배 인도해, 그리고 수요예배도 맡아!” “......”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으나 어쩌랴, 내 운명을 쥐고 있는 이의 명령이었다. 거부할 시에는 내 모든 나머지의 군대생활이 고난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주일과 수요일 예배뿐만 아니라 밤에 취침 전 병사들이 누워있는 가운데 그들의 평안을 위한 묵상 메시지와 기도, 전방부대 OP, 철책 근무 병사들에게 차 나르기, 생활 및 신앙 상담 등 그야 말로 정훈 병, 군종 병들의 업무들 보다 더 넓고 깊은 목회의 세계로 서서히 잠입해 들어갔다.

말해 무엇 하랴? 나는 신학교 입학 때도 받지 못했던 소명을 군대에서 받았고 전역 후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발에 먼지를 털었던 그곳에 소명으로 다시 찾아갔다.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다시 돌아온 사실에 대해서 학교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으나 그 때부터, 내 눈앞에 파란색 성경책이 보이기 시작한 그 때부터, 아니 어쩌면, 아니 틀림없이 그 이전부터 주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학교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스스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으나 우선 그 이전과는 사뭇 다른 나의 태도에 대해서 학교는 안심했고, 이어 내가 나타내는 발군의 성적, 실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장로회신학대학의 걸어 다니는 신화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몇몇 교수님들은 공부 안하는 후배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나의 스토리를 들려주곤 했다. 심지어 몇 분 교수님들로부터 장차 당신들을 잇는 교수 감으로 거론이 되기도 했다는 이야기며... 많은 것들이, 그야말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화되어 갔다. 바로 그 변화의 출발점에 파란색 비닐 커버의 기드온 성경책이 놓여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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